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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의 생각과 글

마음의 진공 상태와 스스로의 인지

by 리안의 생각과 심리학 2023. 10. 15.

마음의 진공상태가 있다는 것은 그 대상과 일체감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거울을 보고 자신의 이름을 말하면 그것은 너무 당연한 스스로이기 때문에 거기서 진공 상태가 발생하지는 않지만, 거울을 보고 '나는 나비다'와 같은 말을 하면 그것에서 오는 괴리감은 마음의 진공 상태를 유발한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나는 거울을 보고 내 이름을 말했을 때 마음에 진공 상태가 생기지 않을까.

이상한 경험인지 당연한 경험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전부터 나는 내 이름을 말하거나 불리어도 그게 '나 자신'이라는 생각이 안 든다.

한 편으로는 당연히 그게 나 자신임을 인지하고 있지만, 또 다른 한 편으로는 그냥 나라는 존재를 구별하기 위해 붙여진 '단어'라고 밖에 느껴지지 않아서 자아와 내 이름 사이에 거리감을 느낄 때가 있다. 마치 내 이름이 나 자신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굳이 내 마음에 진공 상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또 그렇다고 해서 완벽한 일체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아무튼 모든 존재, 그리고 인간이라는 존재는 물질적으로는 신체가 존재하는 이 시공간에 위치하고 있지만, 영적이고 정신적인 우리의 자아는 신체에 제한된 존재가 아니다. 결국 영적 자아와 신체적 자신은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동일한 존재인 것이다. 

 

몇 몇 영화에서 다루어진 주제 중에 다른 사람과 신체가 바뀌는 것들이 있다. '나'의 존재가 다른 사람의 신체를 이용하게 된다고 해서 '나'라는 존재가 사라진 것이 아니다. 또한 '나'라는 존재가 기존의 신체로서 존재하던 그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타인의 신체에서 타인으로 활동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껍데기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똑같은 '나'라는 존재인 것이다. 영화에서 다루어진 비현실적인 주제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마 그 비현실적인 주제에서도 왜 굳이 '나'라는 자아는 바뀌지 않는 것이었을까. 결국 우리의 정신적인 존재는 물리적/신체적인 존재와 다른 차원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물리적인 존제인 신체는 오직 정신적인 존재가 이끄는 곳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내가 오늘 아침에 버스를 타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나의 신체는 절대 버스를 타는 행위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물을 마셔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절대 나의 신체는 물을 마시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현재 있는 이 순간, 이 공간에 있음을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였고 그에 따라 신체를 움직였으며 현재 내가 존재하는 이 순간, 이 공간을 내 정신이 '인지'하고 있다. 이것이 동시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나라는 존재는 존재하고 있지 않다. 여기서 어떤 자는 '학교에 가기 싫은데 가야해서 억지로 간 것은 내가 생각하고 선택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아니다. 학교에 가야한다는 외부적 상황이 주어졌고, 그 상황을 '인식'하고 '인지'하였고 그 상황에 따르고자 '결정'한 것은 스스로이다. 

 

본인이 존재하는 시공간은 본인의 의식만이 결정할 수 있으며 그에 따라 물리적인 신체는 그 시공간에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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